오탁번의 폭설 폭 설 삼동(三冬)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(南道)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- 주민여러분! 삽들고 회관앞으로 모이쇼잉! 눈이 좆나게 내려부렀당께!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- 워메, 지날나부렀소잉!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 싸게 나오쇼잉!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, 앗 !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(天地)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.. 2023. 2. 20. 이전 1 다음