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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은영상

오탁번의 폭설

by 손주사랑 2023. 2. 20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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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탁번,「폭설(暴雪)」 (낭송 _ 이인철).mp3
2.66MB

 


폭 설

삼동(三冬)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

남도(南道) 땅끝 외진 동네에

어느 해 겨울 엄청난 폭설이 내렸다

이장이 허둥지둥 마이크를 잡았다

- 주민여러분! 삽들고 회관앞으로 모이쇼잉!

  눈이 좆나게 내려부렀당께!



이튿날 아침 눈을 뜨니

간밤에 또 자가웃 폭설이 내려

비닐하우스가 몽땅 무너져 내렸다

놀란 이장이 허겁지겁 마이크를 잡았다

- 워메, 지날나부렀소잉!

  어제 온 눈은 좆도 아닝께 싸게 싸게 나오쇼잉!



왼종일 눈을 치우느라고

깡그리 녹초가 된 주민들은

회관에 모여 삼겹살에 소주를 마셨다

그날밤 집집마다 모과빛 장지문에는

뒷물하는 아낙네의 실루엣이 비쳤다

  

다음날 새벽 잠에서 깬 이장이

밖을 내다보다가, 앗 ! 소리쳤다

우편함과 문패만 빼꼼하게 보일 뿐

온 천지(天地)가 흰 눈으로 뒤덮여 있었다

하나님이 행성(行星)만한 떡시루를 뒤 엎은 듯

축사 지붕도 폭삭 무너져내렸다



좃심 뚝심 다 좋은 이장은

윗목에 놓인 뒷물대야를 내동댕이치며

우주(宇宙)의 미아(迷兒)가 된 듯 울부짖었다

- 주민여러분! 워따, 귀신이 곡하것당께!

  인자 우리동네, 몽땅 좆 돼버렸소 잉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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